전시·교육·행사
영원한 청춘의 시인 박인환

전시·교육·행사

상설전시

마리서사

모더니스트 시인들의 사랑방

마리서사

8.15 광복과 함께 서울로 돌아 온 박인환 시인은 아버지께 3만원, 작은 이모에게 2만원을 얻어 종로 3가 2번지(낙원동입구)에서 이모부의 포목점 바로 옆에 서점을 열었습니다. 그가 책방을 경영한 가장 큰 동기는 '책을 좋아하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마리서사]라는 이름은 일본의 모더니즘 시인 안자이 후유에의 군함말리 에서 따왔다는 설과, 시인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킨 프랑스 화가이자 시인인 마리 로랑생의 이름에서 '마리'를 따왔다는 설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마리서사의 문을 연 때, 시인의 나이는 20세였습니다. 새로운 문물에 대하여 알고자 하는 욕구와 정열이 한창인 때에 이 서점은 하나의 작은 캠퍼스 였을지도 모릅니다. 앙드레 브르통, 장 콕도 등 여러 문인들의 작품과 문예지, 화집 등 주로 문학, 예술분야의 서적들을 취급하였으며, 이곳에서 김광균, 김기림, 김수영, 임호권 등 문인, 예술인 등과 교류하였으며 한국 모더니즘 시운동이 일어난 발상지였습니다. 부인 이정숙 여사도 이 서점에서 처음 만났다고 합니다.

모더니즘 시운동의 시초가 된 선술집

유명옥

유명옥은 김수영 시인의 어머니께서 충무로 4가에서 운영한 빈대떡집입니다. 이곳은 현대 모더니즘 시운동이 시작된 곳으로 김수영, 박인환, 김경린, 김병욱, 임호권, 양병식 등이 모여 한국 현대시의 새로운 출발과 후기 모더니즘의 발전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나눴던 곳입니다. 동인지[신시론] 제1집 발간의 밑거름이 된 역사적인 곳입니다.

추억의 다방, 모나리자

모나리자

‘모나리자’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명동에서 가장 먼저 문을 연 다방으로 장르를 막론하고 명동의 많은 문화인들이 출입하던 유명한 다방입니다. ‘다방’이라는 공간이 물론 차를 마시면서, 시도 쓰고, 잡담도 나눌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지만, 당시 신문에 글을 게재하는 것이 생계 수단이었던 문인들이 신문사의 편집국장을 우연히라도 만날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문인들의 교류지이자 예술적 집합 장소

봉선화다방

봉선화다방은 고전음악 전문점으로 8.15 해방이 되자 명동부근에 처음으로 개업을 한 다방입니다. 문인들이나 예술인들이 모여 차를 마시거나 서로 연락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많은 문화행사를 이곳 다방에서 열었습니다. 시인들을 위해서는 시낭송의 밤, 출판기념회를 열었으며 종군 화가들의 전시회 뿐만 아니라 시화전과 작곡 발표회도 열었습니다. 해외로 나가는 예술인들을 위한 환송모임, 귀국보고회 등도 모두 다방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처럼 1950년대 문인들의 모든 희로애락과 낭만, 젊음, 예술 등의 결정은 다방이라는 공간을 통해 만들어졌습니다.

찬란한 명동 예술인들의 삶의 집합처

동방싸롱

1955년 겨울에 명동 옆 삼층건물에 ‘동방싸롱’ 이 문을 열었습니다. ‘동방싸롱’은 사업가 김동근씨가 예술인들을 위해 지어준 3층 콘크리트 건물로서 당시로선 최신식 건물이었습니다. 1층은 차와 간단한 술과 안주를 파는 싸롱, 2층은 집필실, 3층은 회의실로 구성된 종합문화회관 이었습니다.

예술가들을 휘감았던 명동의 술집

포엠

이곳은 위스키 시음장으로 문을 연 뒤 값싼 양주를 공급해 명동 예술인들의 사랑을 받았던 ‘포엠’ 술집입니다. 50여 년 전 문학을 논했던 ‘명동백작’ 들에겐 펜과 종이, 술병이 명동 행차의 필수품이었으며 작가 이봉구는 자신의 작품 ‘명동’과 ‘명동백작’에서 “명동이 있고, 문학이 있고, 술이 있었기에 행복했었다.” 고 그 시절을 회고하고 있습니다.

세월이 가면 노래가 만들어진 명동의 막걸리집

은성 [대폿집]

탤런트 최불암씨의 어머니(이명숙여사, 86년 작고)는 1950년대~60년대 명동시절에 문인들이 자주 이용하였던 술집 ‘은성’을 운영하였습니다. 최불암씨의 아버지는 인천에서 활동하던 영화제작자였는데, 과로로 일찍 돌아가시게 됩니다. 그 뒤에 최불암씨의 어머니는 외동아들을 데리고 ‘은성’을 차리게 되었습니다. 김수영, 박인환, 변영로, 전혜린, 이봉구, 오상순, 천상병 등 문화예술인들이 막걸리 잔 너머로 문학과 예술의 꽃을 피웠던 ‘은성’은 50~60년대 예술의 중심지인 명동에서 가난한 시대 예술가들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해온 곳입니다. 명동백작으로 불렸던 소설가 이봉구씨가 은성의 단골이기도 했으며, 박인환 시인은 죽기 얼마 전에 ‘세월이 가면’이라는 작품을 이곳에서 남겼습니다.